항산은 어떻게 그 이름을 얻었는가 - 언제 북악으로 봉해졌는가
게시 시간:
2020-01-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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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산(恒山)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주례(周禮)』에는 "정북 병주(并州)의 산진(山鎮)을 항산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백호통(白虎通)』에는 "북쪽은 음(陰)이 끝나고 양(陽)이 시작되는 곳으로, 그 길이 항상 오래 지속되므로 상산(常山)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풍속통(風俗通)』에는 "항상(恒常)이라는 뜻으로, 만물이 북쪽에 잠들어 있으니, 일정한 것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설로는 항산의 산세가 횡으로 뻗어 있어 "횡(橫)"과 "항(恒)"이 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설과, 혼하(渾河)의 옛 이름이 항수(恒水)였기 때문에 항수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순전(舜典)』에서는 북악(北岳)이라 하고, 『우공(禹貢)』에서는 태행항산(太行恒山)이라 하며, 『침중비서(枕中秘書)』에서는 태항산(太恒山), 항종명악(恒宗命岳)이라 하고, 『수경주(水經注)』에서는 원악(元岳), 자악(紫岳) 및 "대무산(大茂山)", "신첨산(神尖山)" 등으로 불렀습니다. 한문제(漢文帝) 때에는 유항(劉恒)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상산으로 개칭되었고, 당나라 원화 연간에는 진악(鎮岳)으로 개칭되었으며, 송나라 진종(眞宗) 때에는 조항(趙恒)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다시 상산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여러 별칭이 있지만, 기본적인 명칭은 "항산"과 "상산"입니다. 관자(管子)에 "항(恒)이란 천도(天道)의 불변하는 이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항(恒)"과 "상(常)"은 모두 "오래 지속됨"이라는 뜻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북악(北岳)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먼 옛날 요(堯)임금 시대에 희화씨(羲和氏)의 네 아들이 각각 사악(四岳)을 관장하였는데, 희중(羲仲)은 동악(東岳)의 장관, 희숙(羲叔)은 남악(南岳)의 장관, 화중(和仲)은 서악(西岳)의 장관, 화숙(和叔)은 북악(北岳)의 장관이었습니다. 순(舜)임금 때는 순임금이 1년 동안 사악을 순수(巡狩)하였는데, 2월에는 동쪽 태산(泰山)으로, 5월에는 남쪽 형산(衡山)으로, 8월에는 서쪽 화산(華山)으로, 11월에는 북쪽 항산(恒山)으로 갔습니다. 『상서(尙書)』에 따르면, 순임금은 겨울 11월에 항산을 순수하던 중 기주(冀州) 곡양(曲陽)에 이르렀는데, 큰 눈이 내려 산길이 막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산을 향해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순간 항산 정상에서 거대한 돌덩이가 순임금 앞으로 날아왔는데, 순임금은 이 돌을 "안왕석(安王石)"이라 칭하고, 후세에는 곡양에 "비석전(飛石殿)"을 건립하였습니다. 이로부터 항산에는 "비석유종(飛石遺踪)"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비록 전설일 뿐이지만, 『순전』, 『우공』 등의 책은 모두 진한(秦漢) 시대에 저술되었으며, 당시 "천하의 명산 12곳을 봉(奉)하였는데, 그중 두 곳이 항산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2천 년 전에 이미 항산이 천하 제2의 산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어야(爾雅)』에는 "항산은 북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진한 시대에 이미 항산은 북악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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