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의 선적: 전적에 기록된 현악의 신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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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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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명산에는 선인의 자취가 많았으니, 북악 항산은 도교의 중요한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서 예부터 ‘현악’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으며, 동굴의 이름은 태을, 땅의 호칭은 금성이라 하여 옛날부터 선도를 닦고 도를 구하는 동천의 복지로 여겨져 왔다. 전적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선계에 오른 이는 모두 일흔 집에 이르렀고, 문헌에 실린 이들만 해도 여덟아홉 명에 달한다. 그들은 혹은 깊은 산속에 은거하며 곡식을 절하고 기를 수련하거나, 혹은 주술을 부리며 세인을 교화하여 이 웅장하고 기이한 산악에 짙은 선의 향기를 더했으며, 입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신선의 미담을 남겼다.
항산의 신선과의 인연은 그 기원을 가장 오래된 상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중선기』에 따르면, 전욱은 흑제로서 태항산을 다스린 바 있으며, 화하의 상고 제왕들의 신성과 항산의 산수와 영기 사이를 연결함으로써 이 산악에 태생적이고도 신성한 기조를 확립하였다. 오악 가운데 하나인 항산은 천지의 조화와 창조의 기운을 담고 있어, 북방의 천지 질서를 상징하는 동시에 상고 선민들 마음속에서 인간과 하늘을 잇는 신산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홍몽에서 비롯된 신선의 운치는 후세의 선인들이 이곳에서 수련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항산의 수많은 신선들 가운데서도 창용은 비교적 일찍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따르면 『열선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창용은 상산(恒山의 옛 이름)의 도사로, 스스로를 은나라 여인이라 칭하며, 수년간 약을 복용해 왔다. 봉추근 항산 기슭을 오가며 지냈다. 삼백여 년에 걸쳐 그녀를 본 이들은 모두 그녀의 용모가 늘 스무 살쯤 된 처녀와 같아서 한순간도 노쇠한 기색이 없었다고 전한다. 이는 그녀의 수련이 얼마나 깊은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녀는 명리와 권세를 탐하지 않고 과시를 일삼지도 않았으며, 오직 초목만을 양식으로 삼아 항산의 산수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항산 초기 수선가들의 귀감이 되었고, ‘초막을 먹고 허공을 베어 내는’ 수련법은 결국 항산 선적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항산의 선인 중에서도 가장 명성이 높은 것은 삼모진군이며, 그 가운데서도 맏형 모영의 수선 사적이 가장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 『광열선전』에 따르면, 모영 자(字)는 숙신으로, 상고의 선인 모몽(자 초성)의 현손이다. 모몽은 주나라 말기에 화산에 들어가 수련하였으며, 진시황 30년에 용을 타고 백일에 승천하였다. 생전에 이미 동요가 그의 현손 모영 역시 장차 선인이 될 것임을 예시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진시황은 아예 섣달을 가평으로 고쳐 경앙의 뜻을 표하기도 하였다. 모영은 한 경제 중원 5년에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남들과 달리 청허의 도를 즐겨 따랐다. 18세가 되자 과감히 가정을 떠나 항산에 들어가 수련하고, 창술을 복용하며 정진하여 도를 닦았다. 이후 그는 왕군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쪽으로 나아가 귀산에 이르러 서왕모를 뵈었으며, ‘태극현진지경’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49세에 다시 항산 북곡으로 돌아와 수련을 계속하였다.
모영이 도를 이루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 아직 살아 계신 부모님을 찾아뵀다. 아버지는 그가 오랫동안 먼 길을 떠나 있던 탓에 크게 노하여 지팡이로 매질하려 하셨다. 모영은 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자신은 이미 성스러운 스승의 부록을 받았으므로 천병이 호위하고 있어 만약 매질한다면 오히려 천병이 이를 막아서서 자신의 죄업만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믿지 않고 굳이 매질을 강행하셨다. 그런데 막대기가 모영의 몸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부서져 화살처럼 튀어나와 벽을 뚫고 기둥을 꿰뚫는 것이었다. 이에 비로소 부모님께서는 그가 이미 도를 깨달았음을 알게 되셨다. 이후 모영의 두 동생인 모고와 모충 역시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는데, 모고는 치금오로, 모충은 서하태수로 임명되어 부임할 때에는 고을 사람들이 수백 명이나 배웅하러 나섰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모영은 웃으며 말했다. “비록 저로서는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지만, 내년 사월 초삼일에는 선계에 오르게 될 터이니, 그날의 장관은 결코 이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한 선제 초원 4년 4월 3일, 모영의 문 앞 수 헥타르에 이르는 땅이 스스로 평탄하게 정리되어 잔디 한 포기조차 자라지 않았고, 그 위에는 청견오와와 백모가 포설되어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모든 손님이 한자리에 모였으나 연회 자리에는 누구 하나 시중드는 이가 없었고, 다만 금쟁과 옥배가 저절로 연회상 앞으로 나아왔으며, 미주와 기요, 이과와 진미가 눈앞에 즐비했고, 비파와 거문고, 금석의 음악이 끊임없이 귀에 들려왔으며, 난초와 사향의 향기가 수 리 밖까지 멀리 퍼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홍 옷에 옥대를 두른 수백 명의 영관들이 호위를 받으며 다가왔고, 깃발과 갑병이 찬란히 빛나며 태양을 가렸다. 모영은 가족과 친지들과 작별한 뒤 수레에 올라 구름을 타고 서서히 승천하였다. 모고와 모충은 형이 승천했다는 소식을 듣자 곧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동산에서 형을 찾아 나섰다. 이윽고 모영이 나타나 두 아우와 만나 그들에게 이미 나이가 많아 천선이 되기는 어렵지만, 불로장생의 법과 상도를 전수해 줄 테니 앞으로 3년간 금식을 하라고 일러 주었고, 또한 구전환단과 신방을 하사하였다. 두 사람은 마음을 다잡고 정진한 끝에 마침내 도를 깨달아 선인이 되었으니, 후세 사람들은 이들 셋을 합쳐 ‘삼모진군’이라 부르며, 항산의 선적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전설로 남겼다.
북위 시대에는 항산에도 선인의 흔적이 전해졌으며, 이교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북사』에 따르면, 이교는 중산 사람으로 유명한 도사 곡겸지의 제자였는데, 수십 년 동안 기를 섭취하고 식사를 하지 않은 채 수행하다가 마침내 항산에 은거하였고, 나이가 90여 세에 이르렀을 때에도 외모는 여전히 소년과 같았다고 한다. 어느 날 이교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정좌한 채로 숨을 거두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가 시해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여겨 항산의 ‘시해승선’이라는 선인 전설을 이어갔다. 곡겸지는 생전에 항산에 ‘상연소객, 하절소부’라는 의미의 공중 사원을 건립하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이교는 그의 제자로서 항산에서 보여 준 수행 업적을 통해 이 산악의 선기(仙氣)에 시대적 흔적을 더했다.
항산 가운데에는 또 한 분의 무명 선인이 계시며, 그 행적은 …에 기록되어 있다. 『북제서』 이 항악 선인은 도가의 부수와 주금의 술법을 정통으로 익혔으며, 약성에 대해서도 손안에 넣은 듯 꿰뚫고 있었다. 북제의 인물 오도영이 명성을 듣고 찾아와 그에게 종사하기를 자청하였고, 선인이 그의 성의를 보고는 자신의 학문을 모두 전수해 주었다. 어느 날 선인이 오도영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본래 항악 선인이었으나 젊은 시절 죄를 지어 천관에게 벌을 받아 인간세계로 추방되었으며, 이제 그 유배 기한이 다하여 곧 하늘로 돌아가게 되니, 오도영에게 분수까지 모셔다 달라고 하였다. 분수에 이르렀을 때 마침 강물이 크게 불어나고 있었는데, 선인이 물속에 한 장의 부를 던지자 순식간에 거센 물결이 멈추더니, 잠시 후에는 수위가 하늘에 닿을 듯 치솟았고, 그럼에도 선인은 태연자약하게 모래와 돌 위를 천천히 건너갔다. 이 일은 오직 오도영만이 생생히 목격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선인이 물 위를 떠다니며 건너가는 것만 보았으니, 모두가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명 선인의 술법이 현현한 이 사건은 또한 항산의 선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신비로운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신선의 전설은 화하 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여겨져 왔으며, 항산의 선적은 고금을 관통하여 전해져 오고 있다. 전욱이 산을 다스렸다는 상고 시대의 전설에서부터, 창용 은둔한 수행에서부터 삼모진군의 도를 깨닫고 승천하는 과정, 이교의 시해성선과 무명 선인의 현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행적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일화는 옛사람들이 장생의 길을 갈망하고 청허의 경지로 나아가고자 했던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러한 전적에 기록된 선인들의 이야기는 항산에 신비로운 선의 운치를 더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이 북악의 명산이 천지와 통하고 선혼과 서로 의지하는 독특한 기질을 늘 간직하게 하여, 화하 대지 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선적의 흔적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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