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원고방지고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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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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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원은 북악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중국 문명의 표지 중 하나였다. 고대 훈원에서는 지방 사지를 편찬할 때, 주로 《훈원주지》를 편찬하는 것 외에 대부분 《항산지》를 부록으로 편찬했다.
혼원은 북악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예로부터 중국 문명의 표지 중 하나였다. 고대 혼원에서는 지방 사지를 편찬할 때 주로 《혼원주지》를 편찬하고 대부분 《항산지》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그러나 역사상 몇 개의 《주지》와 《산지》판본이 있었고, 어떤 판본이 이미 유실되었으며 어떤 판본이 전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혼원 문화계 인사들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큰 의문이었다.
다행히도 장해군 선생님과 같은 선배께서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수십 년 동안 고향의 고전에 주목하여 사료를 탐구하고, 몰두하여 잠긴 것을 드러내어 《혼원고방지고략》이라는 글을 완성하여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의 광범위한 조사, 강력한 개괄, 상세한 서술, 정밀한 분석은 감탄을 자아낸다.
본 논문은 2005년경 《북악보》에 처음 게재되었으며, 본지는 저자의 허가를 받아 재게재한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명 홍치판 《혼원주지》 천일각 소장
방지는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매개체이자 인류 문명의 중요한 상징이다. 혼원은 오악 문화의 발상지 중 하나로 역사가 유구하고 문화가 발달하여 지방 문헌이 유구하고 방대하다. 수당 시대에는 이미 혼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진 남북조 시대에는 항산에 대한 기록이 이미 여러 저술에 나타나 있다. 명청 이후 전란이 빈번하여 혼원 지방지는 많이 유실되었다. 탐구와 정리, 감별을 거쳐 나의 소견을 바탕으로 (주)현지, 항산 전문지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학자들에게 참고 자료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료의 편향성을 연구하고, 연구 검증의 부족을 보완하며, 혼원 문명의 맥락을 정리하고, 혼원 방지의 문화적 함량을 풍부하게 하려는 것이다.
A1 혼원주(현)지
1. 《혼원주기》는 송나라 주변이 지었다. 주변은 자가 소장이며 회주 무원 사람(현 안휘성)으로 봉의랑을 지냈으며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었다. 건염 2년(1128)부터 소흥 13년(1143)까지 대동에 머물렀고, 후에 송나라로 돌아왔다. 이 책은 그가 대동에 머물렀을 때 저술한 것으로, 《환우통지》에 인용된 바에 따르면 명나라 말기에 유실되었고, 《산서고방지집일》에 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2. 《혼원주도경》 저자는 불명이며, 원나라 말기 또는 명나라 초기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우통지》에 인용되어 있으며, 명나라 말기에 유실되었고, 《산서고방지집일》에 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3. 《혼원주지》, 명나라 영락 19년(1421)부터 정통 6년(1441)까지 편찬되었고, 《문원각서목》 제20권에 기록되어 있으며, 명나라 말기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원각서목》 원본에는 《혼원현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명나라 시대 혼원은 주였으므로 현은 주로 잘못 기록된 것이다. 성화판 《산서통지》가 이 책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으며, 《산서고방지집일》에 두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4. 《혼원현지》, 명나라 영락 19년(1421)부터 정통 6년(1441)까지 편찬되었고, 명나라 말기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원각서목》 신지에 기록되어 있다.
5. 《혼원주지》(홍치본) 5권. 명나라 동석이 편찬하고 양대옹이 집필했다. 동석은 태의원 출신으로 절강 회계 사람이며 감생으로, 홍치 2년(1489)에 혼원주 지주가 되었고 후에 종인부 경력으로 승진했다. 양대옹은 혼원 사람으로 성화년도에 거인이 되었고 호남 자현 현감을 지냈다. 고을 지지를 살펴보면 송나라 주변이 《혼원주기》를 편찬했고, 명나라 이전에는 《혼원도경》, 《혼원주지》가 있었는데, 이러한 지서는 《환우통지》, 《명일통지》, 성화판 《산서통지》에 인용되었지만 모두 유실되었다. 동석이 취임한 후 고을 사람 이이가 필사한 지서를 근거로 양대옹에게 명하여 널리 조사하고 편찬하게 하였는데, 풍속, 부역, 지리, 제도, 연혁, 산천, 형세, 고적, 명관, 선거 등의 항목을 약 3만 자로 기록하였다. 이 책의 기록은 홍치 3년까지이고, 홍치 6년에 목판으로 인쇄되었으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고을 지지이다. 그중 글에는 "혼원은 본래 한나라의 아산, 평서 두 곳으로, 혼수가 주 동남쪽 10리의 한나라 칠곡에서 나왔기 때문에 후당 시대에 현으로 설치되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풍속에서는 "인민의 풍속은 순박하며 남자는 힘써 농사를 짓고 상업에는 종사하지 않으며, 여자는 누에치기와 바느질을 하지 않고 매우 고생하며, 사지가 다 닳도록 일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례는 불교식이며, 선비들은 잔치를 좋아하고 집집마다 술이 많다. 명절에는 조상과 친척 친구를 크게 제사 지내고 축하한다. 이 책 홍치 6년 판본은 현재 천일각에 5권의 잔권만 남아 있다.
6. 《혼원주지》(가정). 명나라 안수현이 편찬하고 이요년이 집필했다. 안수현은 북직리 이주 사람(현 허베이 이현)으로 가정 시대에 혼원주 지주를 지냈다. 이요년은 혼원 사람으로 산동 어대현 현령을 지냈으며, 이 책은 명나라 가정 45년(1566)에 편찬되었고 명나라 말기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안 두 사람의 서문이 《산서고방지집일》에 남아 있다.
7. 《혼원주지》(만력) 2권. 명나라 조지한이 편찬하고 왕준초가 집필했다. 조지한은 하남 사수 사람(현 영양)으로 거인이며 만력 38년(1610)에 혼원주 지주가 되었다. 왕준초는 산음 사람으로 거인이다. 39년에 조지한은 홍치 지지를 중수하여 2권으로 만들었고, 다음 해에 책을 완성하여 목판으로 인쇄하였으며, 기록은 40년까지이다. 지리, 제도, 식화, 병정, 직관, 선거, 인물, 예문, 잡기 등 9개 항목 49개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잔권 1책만 남아 있으며, 약 2만 자가 남아 있다. 권두에는 강역, 성, 주야도 3폭이 있다. 연혁에는 "(혼원)은 당나라에 속했고, 서한 아현, 위나라 석성, 동위 곽주, 수나라 개황 초에 평구현, 후당에 혼원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천은 항산 산맥을 주맥으로 하며, 그 밖의 산과 물을 포함하고 있다. 풍속 항목은 《혼원도경》을 인용하여 "사민의 기질은 순박하고 각자 직업을 지키고 변하지 않으며, 근검절약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구 항목은 "변방의 恒風, 이른 서리로 해마다 수확이 적고, 백성 또한 나태하며, 장례는 풍성하게 치르고 농사는 거의 수확이 없다"라고 적혀 있다. 지주 항목은 원나라부터 시작하며, 진사 항목에는 원나라 진사 26명의 기록과 간략한 전기가 함께 적혀 있다. 무과 항목에는 "옛 지지에 따르면 금나라 시대에 유독 성행했고, 원나라 장두기의 기록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장두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지지는 명나라 방지 중 체제가 가장 완비된 것이다. 산서성 도서관에는 북경 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잔권 사본 필름이 있다. 잔권 1책은 오직 북경 도서관에만 남아 있다.
8. 『渾源州志』(순치) 2권, 청나라 장숭덕 편찬. 숭덕, 자는 무수. 직례 창려(현재 허베이성) 사람. 순치 15년(1658년) 위남현령에서 혼위안 지주로 승진. 재임 기간 동안 봉급을 기부하여 기근을 구제하고, 리마와 리푸 등의 폐정을 제거하며, 사하 시장을 건설하여 무역을 활성화시켰다. 주지와 『항악지』를 편찬하였다. 주지는 10문 38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이 40개 있다. 이 지지는 문류가 뒤섞여 있어 『항악지』 편찬에 비해 훨씬 못하다. 그러나 명말 청초의 변혁기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만력에서 순치 연간의 사건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고증이 부족하고 금석비문을 수집하지 않아 대충 만들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순치 18년에 간행되었으며, 현재 산시성 도서관, 베이징 도서관, 홍콩 중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9. 『渾源州志』(건륭) 10권. 청나라 계경순 편찬. 경순, 건륭 23년(1758년) 혼위안 주에 부임. 27년에 지지를 편찬하였으며, 31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앞에는 17개의 그림이 있으며, 순치 주지보다 8경 및 명승 그림이 추가되었다. 주성을 보면 성벽이 팔각형으로, 성지 중에서 매우 드물다. 현 내에 금나라 때 건립되어 명나라 때 수리된 원각사, 원나라 때 창건되어 청나라 때 중수된 영안사의 그림이 모두 있는데, 항산 제일경이라고 불리는 현공사의 그림은 어떤 이유로든 없다. 현은 만리장성이 지나가는 곳이 아니지만, 맹강녀 사당(이 책 사당 항목 참조)이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의 열녀전에는 수녀 항목이 첨부되어 있으며, 100세 이상 된 노부인 2명(최고 103세, 5대가 함께 사는 경우)이 기록되어 있다. 이 항목은 명청 시대 지지에서 매우 드물다. 4월 8일은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탄신일이지만, 혼에서는 도교 항산묘 제례(풍속 항목 참조)이다. 현 내에는 북악 항산이 있지만, 별도로 『항산지』가 있기 때문에 산천 항목의 내용이 매우 간략하다. 직관 항목에는 상당한 누락이 있다. 정덕본 『대동부지』에 기록된 홍무 3년(1370년) 지주 장보, 홍치 18년(1505년) 지주 등월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 보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책의 직관(명대)은 연호와 재임 기간만 기록되어 있고 연대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부족한 점이다. 이 책에는 건륭 28년 간행본, 동치 9년 공광배 각본이 있으며, 공광배 각본에는 그가 지은 『중수혼원주성기』 등 5편의 문헌이 추가되었다. 건륭본과 동치본은 베이징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건륭본은 산시성 도서관, 허난성 도서관, 상하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83년 혼위안 현지 사무소의 백화 납인본이 현존한다.
10. 『渾源州續志』(광서) 10권. 청나라 하수은 편찬, 정적 등이 편수. 수은, 광서 6년(1880년) 혼위안 지주에 부임. 적, 혼위안 사람, 증생. 6년에 지지를 편찬하였으며, 도고, 성야, 학교, 사사, 전부, 병제, 인물, 직관, 과목, 고적, 예문 11문 14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이 1개 있다. 상이 항목에는 광서 3년의 가뭄으로 수확량이 부족하여 현지에서 쌀 1000석을 기부하여 구호 활동을 지원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광서 5년에는 3차례 지진이 발생하였다. 효의 항목에는 20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수민이 첨부되어 있는데, 왕원서가 102세, 그의 부인 좌씨가 104세까지 장수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혼위안에는 고령자가 예로부터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광서 3년에 도·농민에게 기부한 쌀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열녀 항목에는 건륭 연간 이후 878명이 추가되어 있다. 예문 항목에는 주성의 개축, 현자의 업적, 행적 등과 관련된 내용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시는 중요한 내용만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광서 7년 간행본은 산시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A2 혼원도지류
1. 혼원현 경계 약도, 혼원현 서 제작. 먹으로 그린 그림, 크기는 미상, 민국 연간 제작, 베이징 도서관 소장.
2. 혼원현 경계 전도, 혼원현 재정국 제작. 먹으로 인쇄한 그림. 1:136300, 59.7*50.8cm, 민국 20년(1931년) 인쇄. 베이징 도서관 소장.
B1 항산지류
1. 『북악편』 3권, 머리말 1권. 명나라 황부황 등 편집. 북악은 역대 황제가 제사를 지낸 곳 중 하나로 비석이 많고, 옛 일을 알 수 있다. 가정 연간, 곡양현승 후정훈이 처음으로 편찬을 시작하여 순찰사 시산에게 청원하였다. 시산은 후정훈 등에게 조사하고 교정하도록 명령하였고, 황부황이 총편집하여 3권으로 완성하였다. 상권 『제제』, 중권 『공언』, 하권 『지고』, 이 책은 가정 11년에 완성되었으며, 전체가 파란색으로 인쇄되었다. 미국 의회 도서관 중문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베이징 도서관에는 일부만 남아 있어 매우 귀중하다.
2. 『항악지』 2권. 명나라 조지한, 왕준초 초편찬. 지한, 준초, 만력 『혼원주지』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만력 14년(1612년)에 완성되었으며, 2권으로 구성되어 외기, 성기, 산기, 사기, 사기, 사기, 물기, 유기, 선기, 문기, 시기 11목으로 나뉘어 있다. 한나라 이후로 북악은 상곡양현(현재 허베이성 곡양현)에 있다고 여겨왔으며, 특히 송나라 이후 상곡양현에 북악사, 사당을 건립하여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이 책은 곡양악묘 시를 말미에 첨부하였다. 곡양에서 북악에 제사를 지낸 것은 잘못된 전승으로, 청나라 순치 17년(1660년)에 이르러서야 지주 장숭덕이 혼원 항산으로 제사를 옮기도록 청원하였다. 이 지지는 책이 완성된 지 5년 후에 지주 장보령에 의해 간행되었지만, 문기 항목에는 내용이 없다. 청나라 건륭 『사고전서총목』에 수록되어 있으며, 아직 찾지 못하였다.
3、《항악지》3권. 청나라 장숭덕이 편찬. 숭덕은 순치《혼원주지》요약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혼원은 당나라 말기에 현이 설치되었고, 금나라 정우 3년(1215년)에 주로 승격되었으며, 명나라 이후로는 대동부에 속했다. 북악 항산은 혼원성 남쪽 20리에 있지만, 한나라 이후로는 모두 상곡양현(현재 허베이 곡양현)에서 제사를 지냈다. 순치 17년(1660년), 형과 도계사 중 전본성이 혼원주에서 제사를 지낼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부에서는 산서부사 관리에게 항산 유적을 자세히 조사할 것을 명령했고, 장숭덕은 현지 원로들의 의견을 받아 청나라 조정에 보고하여 곡양 비석의 가짜임을 강력히 주장하며 제사를 혼원 항산에서 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예부상서 왕숭간도 제사를 항산에서 지낼 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숭덕은 순치 17년에 《항악지》3권을 편찬하여 다음 해에 목판 인쇄를 했다. 이 책은 제사 의례 기록이 특히 자세하고, 특히 곡양 비석의 가짜임을 바로잡고, 고증이 정밀하며, 항악 경관에 대한 묘사가 감탄스럽다. 책에 실린 항산 18경 판화 조각은 여전히 명나라의 유풍이 남아 있어 매우 드물다. 《사고전서총목》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책은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항산 전문 지지이다. 안타깝게도 공사 기록에 완전한 책이 없다. 이 책의 순치 18년 판본(1661년)은 현재 닝보 천일각에 잔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과학원 도서관과 상하이 도서관에는 잔권이 있지만, 조사 결과 책은 없고 이미 없어졌다. 《중국고적선본서목》에는 국가도서관에 1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북경도서관선본서목》과 《북경도서관보통고적서목》을 샅샅이 조사해도 기록이 없다. 북경도서관에는 건륭판 《항산지》5권만 있으며, 계경순 건륭 28년 판본이다. 매우 기쁜 것은 국내 미술품 경매 및 민간 교류가 활발해진 지 30년 가까이 되는 동안 순치판 《항악지》 완전본 2권이 민간에 나타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항악지》에 수록된 동석 등의 시문은 조지한, 왕준 초본 《항악지》와 같으므로, 장숭덕본 《항악지》가 어느 정도 만력판 관련 자료를 보존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사료적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4、《항산지》5권. 청나라 계경순 저술. 경순은 혼원 지주였으며, 《혼원주지》를 편찬한 적이 있으며, 건륭 28년에 이 지지를 저술했다. 권1은 도고, 어제, 성지이고; 권2는 형, 명, 사, 봉, 묘, 물, 사, 수, 설, 선, 적 11지이고; 권3은 기지이고; 권4는 문지이고; 권5는 시지이다. 항산은 오악 중 북악이며, 현악이라고도 불리며, 혼원 남쪽에 있으며, 허베이 곡양 북서쪽까지 이어져 있다. 한나라 이후로는 대부분 곡양(상곡양) 북서쪽 140리에 있는 항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오직 북위 시대에 혼원 항산에 악사가 있었고, 여러 번 사신을 보내 제사를 지냈다. 명나라 시대에는 혼원과 곡양 모두 북악묘가 있었지만, 제사 의례는 곡양에 정해져 있었고, 청나라 순치 17년에야 혼원으로 옮겨졌다. 이 지지는 혼원의 항산을 정식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곡양 항산을 함께 수록하여 시간 순서대로 배열했기 때문에 두 곳의 차이를 쉽게 구분할 수 없다. 수록된 시문은 대부분 출처를 명시하지 않았고, 원문을 많이 삭제했다. 예를 들어 효문제의 《제북악문》은 《초학기》권5에 인용된 것보다 14자 적고, 당태종의 제문은 《전당문》권10에 수록된 것보다 21자 적다. 권3에 인용된 도장 서목은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며, 전혀 필요 없다. 이 책의 자료는 비교적 완벽하며, 참고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건륭 28년 판본, 가경 24년(1819년) 재간본, 광서 5년(1879년) 판본이 있다. 산서성 도서관, 북경 도서관, 허난성 도서관, 상하이 도서관, 중국사회과학원 도서관, 혼원 문고에 소장되어 있으며, 혼원 민간에도 소장되어 있다.
5、《항산속지》권 없음. 청나라 하수은 저술. 수은은 광서 시대에 혼원 지주를 역임했다. 주지 편찬을 맡았고, 계경순의 《항산지》를 계속 편찬했다. 먼저 건륭 37년(1772년)부터 광서 5년(1879년)까지의 삭봉 경전과 제문을 나열하고, 그 뒤에 항산 각 경의 시가 29수를 기록했다. 계경순의 《제일운도사조》를 마지막으로 싣고, 청나라 초기에 도장을 보충하고 항산 도관을 수리한 도사 유일운의 행적을 기록했다. 항산은 도교의 땅이며, 도사가 전해지는데, 항산 정속 이지 중 유일하게 이 도사만 나오는데, 아마도 수집이 부족했거나, 항산이 오대산 불교 성지에 가까워 위세에 눌려 다른 네 악과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광서 5년 판본은 산서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민간에도 소장되어 있다.
6、《북악묘집》12권. 명나라 하출광, 위학례 저술. 출광은 자가 조문이며, 허난 부구 사람이다. 만력 11년(1583년)에 진사가 되어 어사, 태원부 지부를 역임했다. 이 책은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북악기 1편, 악우고 1편, 악묘도기 1편이고; 권2는 성모술이고; 권3은 사장고, 당태종문 1편이고; 권4는 사장고, 부원문이고; 권5는 사장고, 안원문이고; 권6는 사장고, 각도문이고; 권7은 사장고, 군주현문이고; 권8은 악문고, 당비 3편, 송비 5편이고; 권9는 악문고, 대명비 8편이고; 권10은 악사고이고; 권11은 악시고이고; 권12는 소보 조우가 항산에 오른 시 6수와 뒤에 유린의 식 1편이 있다. 이 책은 항산 북악묘의 역사적 문헌을 종합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만력 판본으로, 전체가 파란색으로 인쇄되어 매우 귀중하며, 청나라 말기 저장 남주 유명 서적 수집가 유승건 가업당의 구장으로, 북경 도서관 진본실에만 특별히 1부(전4책)가 소장되어 있다.
7. 『항산적지(恒山迹志)』 1권. 저술자 미상. 이 글은 먼저 전체적인 내용을 서술한 후 세부적인 내용으로 넘어가며 항산의 지형과 지세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문장이 세밀하고 생동감 있으며, 이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글의 서두는 다음과 같다. "악지(岳地)는 지면에서 수천 척 떨어져 남쪽을 향해 우뚝 솟아 있으며, 결코 외롭거나 위태롭지 않다. 구천궁(九天宮), 회선부(會仙府), 우애(右崖) 모두에서 갈 수 있다. … 하늘은 맑고 기운이 상쾌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먼 마을과 계곡, 그리고 둑과 성채가 마치 바둑알처럼 흩어져 있는데, 삼관(三關), 오대(五台)는 활의 그림자처럼 보이고, 아계(丫髻)는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악(岳)은 외딴 곳에 위치해 있어, 찾는 이가 드물다. 원도묘관(元都妙觀)은 황폐해져 있고, 비석이나 글귀가 많이 남아 있지만, 쓸쓸하게 남겨져 있다. 그러나 갓끈을 드리우고 옥을 차고, 웅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은 삼대(三代)와 양경(兩京)의 관료들이었던 사람들, 즉 각건(角巾)과 티끌 묻은 집에서 사는 왕씨(王氏)나 혜씨(謝氏) 가문의 풍격이 아니었다. 원령궁(元靈宮)은 악정(岳頂) 아래에 있으며, 안팎으로 세 개의 건물이 있으며, 바위를 벽 삼아 지어져 있어 깊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는다. 새벽 종소리와 정오의 목탁 소리는 마치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듯하며, 옛 시대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계단은 98개이며, 옆에는 기둥과 그림이 나란히 서 있는데, 수년이 지나도 500년은 족히 될 것이다. 잎은 봄에 무성하고, 꽃은 겨울에 시들어 간다.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신하들이 임금을 모시는 것 같으며,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엄한 모습은 이곳보다 더 훌륭한 곳은 없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석지도(石脂圖), 잔운강(棧雲岡), 진의대(振衣台), 자지곡(紫芝峪), 백운혈(白雲穴), 구전(舊殿), 환원동(還元洞), 비석굴(飛石窟) 등 25개의 고적 명승의 위치와 지형, 지세를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 글은 『소방호여지총편재보편(小方壺輿地叢編再補編)』에 수록되어 있으며, 광서 17년(1891) 상해 저의당(著易堂)에서 납인본으로 출판되었다. 북경도서관, 수도도서관, 북경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8. 『항악기(恒岳記)』 1권. 청나라 왕석기(王錫祺) 저술. 석기는 자(字)가 수선(壽萱), 호(號)가 수란(瘦冉)이며, 강소성 청하(清河) 사람이다. 청나라 말기 형부사관(刑部司官)을 지냈으며, 지리학에 능했다. 그의 서재 이름은 소방호재(小方壺齋)이다. 여지총초(輿地叢鈔) 및 보편재보편(補編再補編)을 편찬하여 세상에 알렸다. 『항악기』는 저자가 산서성 순원(渾源) 항산에 대해 전문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 글은 항산의 지리적 위치와 고적 명승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으며,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순서대로 위험한 지세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글은 짧지만 내용이 명확하다. 저자가 편찬한 『소방호여지총초(小方壺輿地叢鈔)』에 수록되어 있으며, 광서 17년 판본은 북경도서관, 수도도서관, 북경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9. 『북악중악론(北岳中岳論)』 1권, 엄약거(閻若璩) 저술. 약거는 청나라 산서성 태원(太原) 사람이며, 자(字)는 백시(百詩), 호(號)는 잠구(潛丘)이다. 강희 연간에 린생(廩生)으로 박학홍사과(博學鴻詞科試)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후에 서건(徐乾)을 따라 『일통지(一統志)』를 편찬했으며, 오랫동안 동정산(洞庭山) 서국(書局)에 머물렀다. 지리학에 능했으며, 산천의 형세와 주군(州郡)의 연혁에 정통했다. 이 책은 북악과 중악의 지리적, 군사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논하고 있으며, 매우 체계적이다. 『소방호여지총초(小方壺輿地叢鈔)』에 수록되어 있으며, 북경도서관, 수도도서관, 북경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0. 『항산존고(恒山存稿)』 2권, 진홍서(陳弘緒) 저술. 강희 30년 진사업(陳士業) 전집본. 홍서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강서성 신건(新建)에서 태어났으며, 자(字)는 사업(士業), 호(號)는 석장(石庄)이다. 명나라 말기에 천거를 받아 진주(晉州) 지부(知府)가 되었다. 각신(閣臣) 유우량(劉宇亮)의 군대가 성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으나 파면되었다.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벼슬을 하지 않았으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항산존고』는 지리적 형세를 논하고, 현달(賢達)의 의행(義行)을 서술하며, 탄식하고 노래하며 울부짖는 등 감정이 풍부하고 가치가 매우 높다. 그의 전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북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1. 『항산석묵(恒山石墨)』 1권. 황화번(黃華藩) 편찬, 이 책이 현재까지 알려진 항산 석각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전문 서적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으며, 금석서록(金石書錄)으로 저자는 알 수 없다. 항산 석각과 명문(銘文)에 대한 기록이 많으며, 이 책은 『소욱림총서(小郁林叢書)』에 수록되어 있으며, 북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2. 『악도비서(岳圖秘書)』 2권. 청나라 장태래(張泰來) 저술, 오악(五岳)의 상세한 지도가 포함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청나라 강희 연간에 간행된 판본이 현재 하남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3. 『육악등림지(六岳登臨志)』 6권. 명나라 공황(龔黃) 저술, 현재 명나라 집허당(執虛堂) 판본이 있으며, 명나라 시대 북악 항산에 대한 기록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북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14. 『사악유기(四岳遊記)』 청나라 오원기(吳源起) 저술. 북악 유기(遊記)를 참고할 수 있다. 청나라 강희 연간 위외당(畏畏堂)에서 간행된 판본이 현재 상해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B2 항산도지류(恒山圖志類)
1. 『항산전도(恒山全圖)』 민국 시대 순원(渾源) 민간 예능인 긍건영(耿建瀛)이 그린 그림, 광주도서관과 순원 민간에 소장되어 있다.
2. 혼원현 경계 전도, 혼원현 재정국 제작. 먹으로 인쇄한 그림. 1:136300, 59.7*50.8cm, 민국 20년(1931년) 인쇄. 베이징 도서관 소장.
본문 참고 서적
『중국문헌총목(中國文獻總目)』『관장방지목록(館藏方志目錄)』『산서문헌총목(山西文獻總目)』『산서문헌총목제요(山西文獻總目提要)』『산서고방지집일(山西古方志輯佚)』『산서방지개술(山西方志概述)』『비전집(碑傳集)』『비전속집(碑傳續集)』『명사예문지(明史藝文志)』『청사고예문지급속편(清史稿藝文志及續編)』『청사고예문지십유(清史稿藝文志拾遺)』『중국지방지련합목록(中國地方志聯合目錄)』『중국고적선서목(中國古籍善本書目)』『중국선서목제요급보편(中國善本書提要及補編)』『신편천일각서목(新編天一閣書目)』『천일각진희방지목록(天一閣珍稀方志目錄)』『산서통지(山西通志)』『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천경당서목(千頃堂書目)』『문원각서목(文淵閣書目)』『북경도서관선서목(北京圖書館善本書目)』『상해도서관소장선서목(上海圖書館所藏善本書目)』『중과원도서관선서목(中科院圖書館善本書目)』『미국국회도서관장중문선서목(美國國會圖書館藏中文善本書目)』『중국역사대사전(中國歷史大辞典)』『중국역대인명대사전(中國歷代人名大辞典)』『고금동성명대사전(古今同姓名大辞典)』『대동부지(大同府志)』『운중군지(雲中郡志)』『환우통지(寰宇通志)』『산음현지(山陰縣志)』『순원주지(渾源州志)』『항산지(恒山志)』『청대직관년표(清代職官年表)』『문헌가통고(文獻家通考)』
교정: 설방(雪芳)
편집: 형학린(邢學琳)
저자 소개
장해군(張海軍), 1970년생, 산서성 순원(渾源) 출신, 고적 문헌 수집 및 연구자.
키워드:
산 경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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